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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관희 - 아버지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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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4 08:21:01, hits : 2822
아버지의 가을
새벽부터 그리움 퍼다 논바닥 채우시던 아버지
참새떼가 벼의 낱알을 쪼아댄다 해도
어찌 당신의 그리움까지 쪼을 수 있으리요
어느 누구도 논바닥에 마음을 심으려 하지 않을 때
새벽 그리움으로 나가 해거름으로 돌아오시던 나날들
아무도 당신의 삶을 아름답다 말하지 않고
아무도 당신의 삶을 넉넉하다 말하지 않지만
우릴 기다리는 것이 설움만은 아닐거라고
그래도 살아온 날들보다 좋은 날들이 많을 거라고
자식 등 어루만지며 올려다보신 당신의 빈 하늘
당신의 일생 거북등처럼 갈라져 웃풍이 세어지고
경운기 가득 당신은 가을을 싣고 달려오시지만
뒷마을 장가 못 간 순이 삼촌은
기어이 농약을 마셔버리고
독촉장 움켜쥔 채 가을에 더욱 늙어버리는 당신의 아내
가난과 빚과 헛된 고생과 버림받음만이 무성한
무엇을 기대하거나 더 기다릴 수도 없는
아무런 희망도 남아있지 않은 농촌에서
추곡전량수매, 쌀시장개방저지 싸움의 깃발은 드높지만
그 누가 채울 수 있을까요
텅텅 비어버린 당신의 일생과
홀로 설 수 없는 우리들의 내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