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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 전봇대가 쓰러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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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용	2005-09-27 22:59:11, hits : 3076

전봇대가 쓰러지셨다

전봇대가 쓰러지셨다/김종원

몇 동 몇 호에서 버려진 중년인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기엔
부실한 하체를
아파트 앞 전봇대에 기대고
뼈만 남은 손으로 그네를 미듯
전봇대를 밀고 있다

등뼈를 활처럼 굽히며
자꾸만 밀면
아침이 올지도 모른다는 얼굴로
그 날이 올 때까지
납물같은 저녁을 등에 지고
전봇대를 밀고 있다

슬픔마저도 불어터진
그의 그의 삶이 안타까웠는지
꺽꺽, 거리며 울음소리를 내더니
조금씩 휘며 굽어지는 시늉을 하다가

쓰러지셨다

더러운 땅과의 마찰에
무좀이 끊이질 않는다고 불평하던
전봇대가 마침, 쓰러지셨다

놀라운 일이지만

그의 생애는 그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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